About YAMATO Origin of Japan

문화

스모의 발상지

相撲発祥の地

아나시니이마스효즈 신사로 향하는 길 옆에 있다. 약 2000년 전, 노미노 스쿠네와 타이마 노케하야가 스이닌 천황 앞에서 스모 시합을 벌였다. 이것이 일본 고유의 국가 기예인 스모의 시초이다. 당시의 스모는 서로 걷어차는 방식으로서, 노미노 스쿠네가 타이마 노케하야의 허리를 밟아 꺾어 목숨을 빼앗았다고 한다. 노미노 스쿠네는 스모의 선조로 여겨진다.

일본 예능의 발상지

日本芸能発祥の地

츠치부타이(土舞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일본 서기'에 의하면 612년, 그 시대의 세력자였던 쇼토쿠 태자가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해학적인 가면극을 이곳에서 소년들에게 가르쳤다고 쓰여 있다. '쯔치부타이'는 일본 최초의 국립 극장으로서, 국립 극장 연구소도 병설되어, 일본의 예능 문화 발전의 장이었다. 역사에 대한 경의를 품고, 지금도 이곳에서 음악 콘서트 등의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노가쿠(能楽)

쯔치부타이에 전해진 기악(伎楽)은 조정의 보호를 받아, 주로 귀족 앞에서 행해져 왔다. 8세기 말에 조정의 보호로부터 멀어지자, 신사나 절, 길거리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농민의 예능과 민중 사이에 토착된 기예를 융합하여 일본 독자적인 발전을 해왔다. 14세기 중반에는 '야마토 시자(大和四座)'라고 하는 4개의 유력한 극단이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의 전통 가무극의 주요 계파인 호쇼류(宝生流)의 기원인 토비자(外山座)는 단잔 신사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무나카타 신사[宗像神社]에 호쇼류 발상지의 비석이 있다. 유우자키자(結崎座)의 칸아미와 제아미 부자는 노가쿠를 보다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칸아미는 기존의 유머 중심이었던 것에 음악이나 춤 등을 도입하여, 아름다움을 승격시켰다. 또한 제아미는 무겐노(夢幻能)라고 하는 죽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극을 완성했다. 죽은 사람의 시선으로 세계를 이야기하는 형식은 노가쿠만의 독자적인 것으로, 현대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노가쿠는 2008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무형 문화 재산에 등록되었다.

단잔노(談山能)

노가쿠를 집대성한 칸아미・제아미 부자의 본거지로서 중요시되어온 단잔 신사에서는 매년 5월 중순에 경내에서 노가쿠가 봉납된다. 노가쿠가 생겨난 당시를 체험할 수 있다.

간제류(観世流)의 발상지 유우자키(結崎)

멘즈카(칸제류 발생지의 기념비)

하늘에서 가면이 떨어져 내려, 칸아미는 그 가면을 쓰고 장군 앞에서 춤을 추며 호평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곳 가와니시마치 유우자키(川西町結崎)는 칸아미가 집을 짓고, 노가쿠를 널리 알린 곳이다.

소멘의 유래

そうめん発祥の地

차가우면서도 섬세한 음식 소멘

소바, 우동, 라멘은 외국인이 많이 알고 있는 일본의 면이지만, 소멘을 아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소멘이란 밀가루로 만든 하얀 면이다. 파스타와 닮았지만, 면의 굵기는 직경 1.3mm 이내로 얇다. 주로 얼음물 등에 면을 담가 차갑게 먹는다. 면 자체에는 간이 되어 있지 않다. 쯔유에 찍어 간단하게 먹으며, 목넘김을 즐긴다. 우동처럼 따뜻한 국물에 넣어서 먹기도 한다. 그것은 '뉴멘'이라고 한다. 차갑게 해도, 따뜻하게 해도 맛있다. 미와(三輪) 이외에서는 좀처럼 먹기 어려우므로, 꼭 한 번 맛볼 것.

소멘 발상지 미와(三輪)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에 기근이 발생하자 오미와노카미(大三輪の神)의 자손인 신관 일족이 처음으로 소멘을 만들었고 이것이 민중에게 확산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전통적인 제법으로 소멘을 만들고 있다. 소멘을 건조시키고 있는 모습은 겨울의 풍물시(風物詩)가 되었다. 면을 얇게 하려 할수록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고급이 된다. 또한, 장시간 숙성된 것일수록 쫄깃함이 더하므로 고급이다.

제조 방법

  1. 1. 밀가루에 물과 소금을 섞어 반죽한다.

  2. 2. 반죽을 두꺼운 끈 형태로 늘인다.

  3. 3. 기름을 바르면서 가늘게 늘여 나간다.

  4. 4. 2개의 봉 사이에 면을 건다.

  5. 5. 면이 걸린 봉을 높은 곳에 걸어 둔다.

  6. 6. 면과 면이 달라붙지 않도록 주의하며 약 2m 길이로 늘인다.

  7. 7. 건조시킨다.

  8. 8. 면을 잘라 길이를 맞춘다.

  9. 9. 나무 상자에 담으면 완성이다.

체험하기

주조(酒造)의 발상지

酒造り発祥の地

제 10대 스진 천황(약 3세기 경) 시대에 국가에 역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었던 황제의 꿈에 오미와 신사의 신 오오모노누시가 나타나 "축제를 열라"는 계시가 있었다. 천황은 다카하시 이쿠히노 미코토에게 극상의 술을 만들게 하여 신에게 바치고 축제를 열었다. 그러자 역병이 잦아들고, 나라는 평안을 되찾았다. 신이 술 대접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 인해 다카하시 이쿠히노 미코토는 술 책임자의 신으로서 오미와 신사의 셋샤(摂社)인 이쿠히 신사[活日神社]에 모셔졌다. 신에게 바치는 술을 '미와'라 하기도 하고, 미와의 수식어가 "우마자케(맛있는 술)"이었다는 점 등, 오미와 신사와 술의 깊은 관계는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사케 마츠리(酒祭り) 매년 11월 14일

매년 일본 전국의 주조가 시작되는 무렵, 주조의 신으로서 고대로부터 숭배되었던 제신에게 새 술 양조의 안전을 기원하는 축제. 전국의 주조가나 술 관리자가 참석한다. 타카하시 이쿠히노 미코토가 천황에게 신의 술을 바칠 때에 불렀던 와카로 만든 제사 무악 "우마자케 미와의 춤"을 4명의 무녀가 춘다. 경내에서는 전국의 명주 전시나, 타루자케(통술) 대접도 행한다.

전날에는 배전과 기도전[祈祷殿]에 설치되어 있는 주조신의 상징인 직경 약 1. 5m, 무게 약 200kg인 '오오스기타마(大杉玉)'가 푸른 것으로 대체된다. 제사 의식 이후 술 양조 안전의 붉은 신장대와 주점의 상징인 '시루시노 스기타마'가 전국의 주조가・양조원에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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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가(詩)의 발상지

日本の詩発祥の地

만엽집[万葉集]

5세기부터 8세기 후반에 읊었던 시가를 엮은 일본 최고(最古)의 시가집이다.
천황, 귀족에서 하급 관리, 병사 등 다양한 출신의 사람이 지은 시가를 4500수 이상 모은 것으로, 완성된 것은 759년 이후로 추정된다. 권두가[巻頭歌]가 지어진 것은 야마토의 땅으로, 약 240수의 시가가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노래비(歌碑)도 남아있다. 여기서 야마노베노 미치에 노래비가 있는 시가를 몇 수 소개하고자 한다.

애석한 미와야마를 어찌하여 구름이 그토록 가리는가
사람은 그렇다 한들 적어도 구름만이라도 자상한 정이 있었으면

누가타(額田王) 7세기 후반 작

야마토 나라에 당신과 같은 사람이 둘이라 생각된다면
이리 한탄할 일이 있겠습니까
당신이 한 명뿐이니 이토록 한탄스러운 것이지요

작자 미상  제작 시기 미상

일본 최초의 불교 전래지

仏教伝来の地

사쿠라이시 가나야(桜井市金屋) 주변은 과거 대륙을 출발한 배가 오사카(나니와즈 나루터)에서 야마토 강을 거슬러 올라와 도착하던 선착장이 있던 지역으로, 타 지역이나 외국에서 온 사신이나 물자가 많이 상륙했다고 한다. 6세기, 긴메이 천황 시대에 백제에서 온 사절도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곳에 상륙하여 불교를 전했다 한다. 현재 그 장소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원래 일본인은 팔백만신[八百万神 무수한 신을 의미하는 개념]을 믿고 있었지만, 우수한 문화 및 서책과 함께 불교의 가르침이 전래되자 불교는 외국에서 온 신앙으로서 귀족 등 상류층 사이에서 먼저 확산되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긴메이 천황은 “지금까지 이러한 교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기뻐하며 대신들에게 불교 수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대신 중 한 사람이었던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는 “불교는 대륙의 우수한 문화이며 서국에서는 모두 불교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일본(야마토)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편 모노노베노 오코시(物部尾輿)와 나카토미노 가마코(中臣鎌子)는 “이웃 나라 신인 부처를 새로이 섬긴다면 일본 신의 노여움을 살 것입니다.” 라며 반대했다.
이에 천황은 소가노 이나메에게 불상을 맡겨 시험 삼아 예배하도록 허락했지만 불교 수용을 둘러싸고 소가 가문과 모노노베 가문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정계를 양분화하는 정권 다툼으로까지 번졌다. 두 가문의 다툼은 587년,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 등이 모노노베노 모리야(物部守屋)를 죽여 모노노베 가문이 몰락한 뒤에야 끝이 났다. 소가 가문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불교는 일본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가는 방법:
오미와 신사[大神神社]에서 도보 15분
주소:
나라현 사쿠라이시 가나야(金屋)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