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 정보 Origin of Japan

역사

Origin of Japan
야마토의 역사

일본의 시작

일본 열도에 인류의 족적이 남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만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곳 나라 분지[奈良盆地]에서는 약 2만년 전 구석기 시대 후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수렵채집의 원시적인 조몬 시대를 지나, 중국 대륙으로부터 벼농사가 전해져 농경사회인 야요이 시대로 옮겨갔다. "쌀의 힘"으로 권력을 거머쥔 수장이나 거대 취락이 탄생했다. 취락 주변에는 외적의 침략을 대비하여 환호(環濠)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역사는 수렵채집의 원시적인 조몬 시대에서 기원전 3세기에 야요이 시대로 넘어간다. 중국 대륙으로부터 벼농사가 전해졌다. 농경사회가 형성되고, 큰 취락을 만들어 각 지역에 힘을 가진 집단이 출현했다. 외적의 침략을 대비하여 취락 주변에 해자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가라코・카기 유적(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

야요이 시대, 야마토 지역의 가라코(唐古)・카기(鍵) 지역에는 거대한 환호 취락이 있었다. 이 유적에서는 긴키(近畿) 지방의 맹주임을 나타내는 제전으로 보이는 대형건물, 제기인 동탁(銅鐸)을 만든 공방, 야요이 시대의 최대급・최상급의 곡옥 등 중요한 흔적이나 유믈이 발견되고 있다. 현지에는 유적에서 출토한 토기에 그려져 있던 그림을 바탕으로 당시의 누각을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야마타이 국과 마키무쿠(纒向) 유적(기원전 3세기- 3세기)

일본은 지역 집단의 대항 세력에 의해 한동안 안정되었다가, 2세기 후반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일본 전역을 말려들게한 내란이 일어나, 히미코라고 하는 여왕을 세움으로써 마무리되는 '야마타이 국 연합'이 형성되었다. 야마타이 국은 큐슈(九州)에 있다는 설이 있었지만, 최근 사쿠라이시의 마키무쿠에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데라사와 가오루(寺沢薫) 〮가토 아이이치(加藤愛一)

남북 약 1.5km, 동서 약 2km에 달하는 거대한 유적은 아래 4개의 이유로 야마토 왕권 최초의 수도가 되었다.

  1.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음.
  2. 큐슈나 관동 등에서 만들어진 토기가 많이 발견됨. 교류가 있었던 지역에서 왕에게 헌상된 것으로 추측된다.
  3. 거대한 고분이 처음으로 이 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진 점.
  4. 농경 도구보다는 토목공사용 공구의 출토가 많음.

조사 면적은 넓이의 약 2%도 되지 않으며, 아직 불분명한 부분도 많이 남아있다.

고분 시대 / 야마토 시대 3-7세기

야마타이 국의 힘은 야마토로 이어졌다.  일본 각지의 힘 있는 세력을 동지로 영합한 야마토는 일본의 거의 대부분을 다스리며, 일본의 중심이 되었다. "야마토"라는 말은 '일본'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금도 일본 고유의 민족 정신을 "야마토 타마시(大和魂 야마토 정신)"라 하며, 오키나와 사람은 일본 본토(홋카이도-큐슈) 사람을 "야마톤츄"라고 부른다. 일본의 원형이 이 즈음에 만들어졌다. 또한, 야마토 시대에는 왕 등의 세력가의 묘인 거대한 전방후원분이 많이 만들어져 '고분 시대'라고도 불린다.

야마토의 고분군

고분이란 흙을 높게 쌓아올린 분구(墳丘)로 된 무덤을 가리키며, 특히동아시아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권력자의 무덤으로서 활발하게 축조되었다. 일본사에서는 보통 3세기 중반부터 7세기 사이에 일본에서 축조된 무덤을 가리킨다. 이곳 야마토에서는 전방후원분을 많이 볼 수 있다. 야마노베노 미치(山辺の道)를 따라 오오야마토(大和), 야나기모토(柳本), 마키무쿠 고분군(纒向古墳群)과 서쪽의 미야케 고분군(三宅古墳群) 등 야마토 지역에는 2000개 이상의 고분이 있다.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

고대무덤 양식의 일종. 열쇠구멍의 형태를 띤다. 야마토 지역에서 3세기중반 무렵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일본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7세기 초반 무렵까지 축조되었으며, 이 고분의 축조기법이 확산된 것을 야마토 정권의 세력 확장의 증거로 본다.

구조

원형의 장소를 뒤에 두는 것을 후원부라고 한다. 시신은 이곳 정상 부근에 매장된다. 구릉부는 돌이 채워진 급경사이다. 때로 해자로 주위를 둘러싸는 경우도 있다. 관은 돌과 점토로 철저히 밀폐된다. 액막이로서 많은 구리거울이 관 주위를 따라 놓여있는 것도 있다. 왕을 섬기던 부하들은 함께 생매장되었다 한다. 그러나, 4세기 무렵, 이를 가혹하게 여긴 스이닌 천황이 순사(殉死)를 폐지하면서, 대신에 사람이나 동물 모양을 한 인형 '하니와(埴輪)'가 묻히게 되었다.

고분 보러가기

아스카 시대 이후 6세기 말-

불교가 대륙에 의해 전래되고, 천황을 불교에 귀의시키려는 소가씨(蘇我氏)와 기존의 신도를 지키고자 하는 모노노베씨(物部氏)의 싸움이 일어났다. 소가씨가 승리하자, 야마토에서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아스카로 도읍을 옮겼다. 그로부터 100년 정도 아스카 시대가 계속되었고, 수도는 나라(奈良)로 옮겨졌다. 그후로 84년, 수도를 교토로 옮기고, 교토는 1000년 이상의 수도로서 번영하다가, 근대에 이르러 도쿄로 천도했다. 왕권이 있었던 야마토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